광명산(光明山)에 이르러서는 그 산에 올라가 관세음보살을 두루 찾다가, 

그가 산 서쪽 언덕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거기는 곳곳에 흐르는 샘물과 못이 있고 숲은 우거졌으며 풀은 부드러웠다.

그는 금강 보배 자리에 가부하고 앉아 있었는데 무수한 보살들이 그를 공경하며 호위하고 있었다.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 중 일부 발췌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수월관음도>는 달빛이 흐르는 바다에 솟은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觀音普薩)이 진리(眞理)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의 내용을 형상화(形象化)한 회화입니다. 현존하는 수월관음도 중 대다수는 일본에 남아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소장 중인 두 수월관음도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좌측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고려시대, 14세기, 비단에 금니와 채색, 163.8 x 84.3cm, 나라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우측

<수월관음도>

고려시대, 14세기, 172 x 64 cm, 비단에 금니와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위의 <수월관음도>에서는 두 작품 모두 고려불화의 독보적 표현양식인 금니(金泥)의 채색과 유려한 선묘(線描), 그리고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묘사가 보입니다. 달이 비친 바다, 버드나무가 든 정병(淨甁), 기암괴석(奇巖怪石)을 배경으로 걸 터 앉은 관음보살(觀音菩薩), 그를 쳐다보는 선재동자(善財童子)라는 구도는 공통적입니다. 그러나 나라국립박물관 소장(좌측 <수월관음도>)의 경우 다양한 해상(海上) 모티프의 표현, 관음 머리 위 화불(化佛)의 표현, 얼굴이 드러나는 선재동자(善財童子)의 나타나는 등 미묘한 차이가 보입니다.


고려 수월관음도의 섬세하고 세밀한 표현을 확인해볼까요?



선재동자는 왜 관음보살을 찾아나선 걸까요?


의겸(義謙),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중 선재동자

조선시대, 1730, 비단에 금니와 채색, 105.7 x 143.5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수월관음도 발 밑에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함께 그려집니다. 선재동자는 왜 관음보살을 찾아나선걸까요? 그는 ‘보리심(菩提心)'이라고 하는 깨달음을 얻고자 관음보살을 찾았습니다. 남방으로 떠난 선재동자는 마침내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에서 관음을 만납니다. 보살의 발 아래 엎드려 절하고, 주위를 돌고, 그 앞에 서서 어떻게 보살의 행(行)을 배우고 닦으러 선지식(善知識)을 찾을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즉, 선재는 중생(衆生)을 구하기 위한 법도(法道)를 배우고자 관음(觀音)을 찾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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