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사냥꾼, 가토 기요마사


가토 기요마사의 명성은 호랑이를 진짜로 퇴치했다는 전설로 유명합니다. 이때 호랑이 사냥의 무대는 조선입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머물 당시 호랑이가 자신의 시동을 물어 죽여 화가 난 기요마사는 산을 부하들과 둘러싸고 호랑이를 처지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는 호랑이를 잡았던 걸걸까요? 실제로 도쿠가와미술관에는 가토 기요마사의 호랑이 골로 추정되는 유물이 소장되어 있어, 그 전설에 흥미를 더합니다.


<히키후다 가토 기요마사의 호랑이 퇴치 (引札類 加藤清正の虎退治)>

메이지(明治) 시대, 다색석판(多色石版), 36.3x50.5cm, 교토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히키후다(引札類)는 상품선전 전단지를 가리키는 말로, 에도시대 우키요에(浮世絵)의 발달과정에서 생겨난 용어입니다. 히키후다에서 종종 등장하던 모티프 중에 하나로 호랑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판화에 무장한 인물이 가토 기요마사이며, 주모지야리 또는 십문자창(十文字槍)으로 호랑이를 찌르려는 모습과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상반됩니다.

<카타카마 야리(片鎌槍)>

무로마치(室町)시대, 16세기, 도쿄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이 창은 가토 기요마사(加藤 清正)가 호랑이 사냥 중 한쪽 가지가 꺾였다는 전설을 지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쪽 끝이 짧고, 다른 창의 끝은 긴 것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물관에 따르면, 처음부터 이 창은 이와 같은 모양 그대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기요마사의 딸이 요린인(瑤林院, 1601-1666)이 기슈번(紀州藩)의 초대 번주(藩主)이자 도쿠가와 요리노부(徳川頼宣, 1602-1671)에 출가하며 가져간 혼수(婚需) 지참품(持參品)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무사, 가토 기요마사

가토 기요마사의 이미지와 화려한 갑옷과 투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갑옷은 도세구소쿠(當世具足)라고 불리는 것으로 일본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1336~1573) 후기부터 아즈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 1568~1600) 전반에 걸쳐 유행했던 갑옷의 형태입니다. 비록 기요마사의 갑옷은 아니지만, 전국시대 화려한 무사들의 갑옷의 유행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러 색 끈으로 엮은 도세구소쿠(当世具足) 갑옷>

에도(江戸)시대, 18세기, 철, 가족, 칠, 비단 등, 높이 70.4 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가토 기요마사의 유품


다음의 창 2구는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후기(後期)에 제작된 것으로, 모두 기요마사(清正)의 딸이 출가(出家)하며 혼수(婚需)로 지참(持參)했던 혼수품입니다. 앞에서 보았던 카타카마 야리 (片鎌槍)와 함께 도쿠가와(徳川) 가문에서 기요마사(清正)의 무기로 가문 대대로 전해내려 왔다고 전합니다.


카네시게(兼重), <오오미노 야리(大身槍)>

무로마치(室町) 시대, 16세기, 도쿄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아사후네스케사다(長船祐定), <에이쇼(永正) 원년(元年) 3월일(三月日) 명(銘) 오오미노 야리(大身槍)>

무로마치(室町) 시대, 1504, 도쿄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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