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의 원불(願佛)


1912년 조선총독부가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건봉사에 소장된 유물과 유적을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 중 하나입니다. 아래의 사진 속 불상은 2006년 불교문화재단의 조사를 통해 사명대사의 원불(願佛) 또는 호신불(護身佛)로 밝혀진 금동여래좌상입니다. 


<강원 고성 건봉사(乾鳳寺)  낙서암 전 송운대사(松雲大師) 원불(願佛)>

1912년, 유리건판, 11.9x16.4cm, 『유리원판목록집』Ⅰ 72 ⓒ국립중앙박물관

이 금동여래좌상의 복장문(腹藏文)에는 “석가여래 가르침에 제자 사명사문 유정이 귀의합니다 (釋迦如來遺敎弟子四溟沙門維政歸依)”라고 적혀있어, 사명과 관련이 깊은 불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1882년에 간행된 『금강산건봉사사적(金剛山乾鳳寺事蹟)』 을 살펴보면, 금강산에 위치한 건봉사는 사명대사가 출가한 사찰이며, 진영, 원불, 은탑, 가사, 염주 등의 유물이 모두 이 곳에 남아있다고 전합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사명과의 회담에서 왜 그를 "금강산 고승"이라고 지칭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명대사 장삼과 가사


장삼(長衫)과 가사(袈裟)는 승려의 착용하는 법의(法衣)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명대사(泗溟大師)의 유품(遺品)인 이 장삼(長衫)과 가사(袈裟)는 착용자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조선시대 중기의 승려의 법의가 거의 현전하지 않아, 희소성을 지니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당대 조선 중기 고승(高僧)들의 의복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장삼(長衫)>

조선시대, 면, 총장 12.5cm, 표충사 호국박물관, 국가민속문화재 제29호 ⓒ표충사 호국박물관

사명대사의 장삼은 한 폭에 약 35cm 정도의 고운 무명인 백면포(白綿布)로 제작되었으며,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이 연결된 포의 형태입니다. 장삼은 가사와 함께 승려가 착용하는 법복이며, 착용의 유래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현존하고 있는 진영(眞影)에서는 장삼은 청색, 갈색, 백색 등 다양한 색으로 확인되지만, 실제 남아있는 승려의 의복으로는 이 장삼이 유일합니다.

<가사(袈裟)>

조선시대, 비단, 84 x 240cm, 표충사 호국박물관, 국가민속문화재 제29호 ⓒ표충사 호국박물관

이 가사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에서의 공을 인정받아 선조(宣祖, 재위 : 1567-1608)로부터 하사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상당히 부식된 상태이기 때문에 본래의 색이 온전히 남아있지 않으며, 두 점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총 25조의 대가사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래 이  가사는 "사명대사 금란가사"라는 명칭으로 알려져있었지만, 실제 가사의 뒷면 등에서 옅은 붉은색이 남아 처음에는 분명 홍색 계열의 직물로 제작된 홍색 가사였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상세화면

사명대사 가사 확대화면 (문양), 표충사 호국박물관 ©표충사 호국박물관
사명대사 가사 확대화면 (문양), 표충사 호국박물관 ©표충사 호국박물관

사명대사(泗溟大師)의 가사(袈裟)는 절지화보문(折枝花寶紋)이 시문되어있습니다.


화문(花紋)은 매화와 모란으로, 보문(寶紋)은 잡보(雜寶, 불교나 도교에서 유래한 기물)인 산호(珊瑚), 서보(書寶, 화첩과 책), 여의(如意, 구슬), 보(黼, 도끼모양), 전보(錢寶 또는 원보元寶, 과거 중국의 화폐 명칭), 방승(方勝, 보자기 끝에 다는 금종이 장식물), 서각(犀角, 무소뿔), 화염보주(火炎寶珠, 불길모양 장식)로 팔보문(八寶紋)이 시문됩니다. 이와 같이 현전하는 가사의 조각에서마저도 매우 아름답고 섬세하게 제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래는 가사의 중조엽(中條葉)에 일(日)과 월(月)이 표시되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사방 모서리에 천왕(天王)이 배치되지만, 현재 사명대사의 가사에는 소실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가토 기요마사의 유물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