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조선통신사는 조선 국왕의 명에 의해 일본에 공식적으로 파견되었던 사절단을 말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은 국교를 재개하며 조선통신사를 통한 교류가 이루어졌고, 이들은 외교와 문화 등 다방면으로 활약했습니다. 통신사 행렬은 화려하고 웅장했습니다. 행렬에는 조선인 뿐만 아니라, 이들을 수행하는 일본인도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습니다. 한양에서부터 에도까지는 약 반년의 시간이 걸렸으며, 그 길이는 왕복 약 3,000km에 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사의 거대한 행렬은 장관을 이루었고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조선통신사 행렬의 현장 속으로 함께 가볼까요?


<통신사행렬도(通信使行列圖)>

조선시대, 18세기, 종이에 채색, 30.7x595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통신사 행렬은 의장기를 든 군악대가 앞장서 에도성을 향해 가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하는 인물들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부감법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2열 종대의 형태를 보이지만 주요 인물군의 행렬은 3열의 행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림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장면은 조선의 국서(國書) 와 국새(國璽)가 실린 가마의 뒤 삼사(三使: 정사正使, 부사副使, 종사관從事官) 등의 행진 모습입니다. 이때 여덟 명의 정인들이 삼사가 탄 평교(平轎)와 국서를 실은 채여(彩轝)를 들고 있습니다. 역관, 의원, 화원 등이 뒤따르며 끝이 나는 이 행렬 그림에는 조선인 198명과 일본인 1,220명으로 총 1,418명의 인물과 191필의 말이 그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안정적이면서도 풍성한 구성, 인물의 이목구비 묘사, 화려한 채색을 통한 장식 효과 등의 특징을 통해 최근 연구에서 18세기 후반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 바 있으며, 18세기의 통신사행을 묘사한 작품 가운데 유일한 조선인 화원의 제작품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통신사행렬도 속 다양한 장면들

통신사의 행렬에는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이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들이 함께 포함되어 다채로운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장면들이 있는지 자세히 확인해볼까요?


 에도의 사람들은 조선통신사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조선인대행렬기(朝鮮人大行列記 )>

에도(江戸)시대, 종이, 12.8x18.9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이 책은 조선통신사의 이국적인 행렬을 해설한 일본의 안내서였습니다. 이 중 특히 화려한 곡예로 인기가 높았던 '마상재'의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었습니다.

 생각해보기 : 에도까지 가는 길은 어땠을까요?




<국서누선도(國書樓船圖)>

종이에 채색, 58.5X1524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이 그림은 조선 국왕의 국서를 실은 누선(樓船, 큰 배)이 일본의 강을 건너는 장면, 즉 통신사 일행이 일본 열도에 이르기까지 사로의 여정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먼저 외양선으로 부산을 출발해서 오사카(大阪)에 당도하여 요도가와(淀川) 하구에 도착하면 통신사 일행은 도쿠가와 막부가 제공한 화려한 가와고자부네(川御座船)로 바꾸어 탑니다.

그것을 타고 요도가와를 지나 오사카 나니와바시(難波橋) 부근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요도가와를 거슬러 갑니다. 이후 교토를 거치고 나면 에도까지 육로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그림의 맨 앞에는 삼사의 부사가 탄 부사선이 그려졌고, 그 다음으로는 국서와 삼사의 정사가 탄 국서선이, 그 뒤로는 삼사의 종사관이 탄 종사관선이 이어져 있습니다.

국서선과 종사관선의 앞뒤로는 10척의 예인선과 3척의 수행선이 따랐고, 조선인 악대와 일본인 사공들이 관찰됩니다.

통신사행의 여정을 보다 자세히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도 만나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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