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 일행은 외국의 다양한 문화를 접했을 뿐만 아니라 현지 지식인들과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조선통신사는 방문하는 지역마다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으며, 이들이 가져온 문물을 고대하는 일본 문인들과의 만남 또한 계속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은 글과 그림으로 기록되어 현재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겸가당아집도(蒹葭堂雅集圖)>

기무라 겐카도(木村蒹葭堂),  에도(江戸)시대, 1764년, 비단에 엷은 색, 종이에 묵서, 44.5×411.5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이 작품은 1763년에 있었던 계미사행(癸未使行)에서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기무라 겐카도에게 제작을 부탁하여 선물로 받은 그림입니다. 

이는 통신사행을 계기로 조선에 전달된 대표적인 일본 회화로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교유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각 부분별로 자세히 살펴볼까요?

<겸가당아집도>의 맨 처음 부분에는 성대중이 지은 7언절구가 적혀있습니다. 

성대중이 통신사행을 다녀온 지 2년이 지났을 때 아집도 속의 한 인물이 편지로 안부를 전하자, 이에 성대중이 당시의 만남을 추억한다는 내용의 시를 적은 것입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藤箋倒射白毫光 등나무 종이에 부처님 백호 빛이 거꾸로 비치니,
萬里携歸別有香 만 리 길을 가져와 향기도 별나구나.
淸月秋懸藏畫舫 맑은 가을 달이 그림을 간직한 배에 걸리고
暖花春滿蓄書房 따뜻한 봄꽃이 책방에 가득 찼네.
鴻魚信息經三歲 3년이 지나 소식이 왔으나
霜露江湖渺一方 서리와 이슬 내린 강호의 땅은 저 멀리 있네.
半幅縹緗隨處在 반 폭의 그림을 어디서나 지니고 다녔으니
海山今擬製琴囊 지금 거문고 넣는 주머니를 만들어 산과 바다 넘어 훌쩍 떠나려 한다네.


槎海之二年 雅集中人致書相問
戊子中秋靑城山人書于東湖官居 

일본에 사행을 다녀온 지 2년이 지나 ‘아집도’ 속의 한 사람이 편지로 안부를 물어왔다.

무자년(1768) 음력 8월 청성산인(성대중)이 동호의 관사에서 쓰다.




시에는 2년이 지나도 서로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그들의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대중의 시 왼편에는 이 만남을 상세히 기록한 교토의 승려 다이텐이 전서(篆書)로 쓴 “겸가아집지도(蒹葭雅集之圖)”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오사카에 머물던 성대중은 상인이자 문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기무라 겐카도와 모임을 갖게 되었고, 그의 일행과 두 차례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대중의 요청에 따라 제작된 <겸가당아집도>는 기무라 겐카도가 그림을 그리고 그의 동료 문인들이 서문을 작성하여 꾸민 것입니다. 


화면에는 꽃이 핀 따뜻한 봄날 기무라 겐카도의 서재인 겸가당(蒹葭堂)에서 기무라 겐카도와 그의 벗들이 아회(雅會)*를 가지고 있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아회(雅會) : 사적인 성격을 지닌 문인들의 모임


서재 안에 있는 일행들은 두루마리를 펼쳐놓고 무언가를 쓰고 있으며, 뒤늦게 도착한 이들은 정원으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차를 끓이고 있는 어린 시종의 모습도 보입니다.


원경에는 구름으로 둘러 싸인 마을 뒤로는 강과 산이 그려져 있고, 강에는 돛단배들이 떠 있는 서정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성대중은 <겸가당아집도>를 보며 이날의 만남을 주변 문인들에게 전하기도 했고, 훗날에는 가문을 통해 전승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양국의 문인들이 서로 간의 소통과 관계를 소중히 여겼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교유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공자상(孔子像)>

가노 산세츠(狩野山雪) 필(筆), 김세렴(金世濂) 찬(賛), 에도(江戸)시대, 1632년, 종이에 엷은 색, 130x44.7cm, 도쿄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이 초상화는 공자의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에도 초기의 유학자이자 도쿠가와 막부의 유교정책을 뒷받침했던 하야시 라잔(林羅山)은 석전(釈奠)*에 사용하기 위한 공자상의 제작을 가노 산세츠(狩野山雪)에게 의뢰하였습니다. 산세츠는 라잔의 요구에 응하였고, 이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것입니다.

*석전(釈奠): 음식과 술을 바쳐 공자와 제자들을 모시는 행사


이 그림에는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림 상단 오른편에 "공자(孔子)"라는 그림의 제목과 함께 적혀있는 제발은 조선인이 적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노 산세츠가 이 그림을 완성한 지 4년 후에 조선 통신사 부사였던 김세렴이 찬을 적은 것이지요. 이러한 내용은 그림의 하단 오른편에 적힌 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인이 그림을 그리고 조선인이 찬을 적었다는 사실은 한-일 교유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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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억 초상(趙泰億肖像)>

가노 츠네노부(狩野常信), 에도(江戸)시대, 종이에 엷은 색, 103.5x49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이 작품은 에도 막부의 어용화가 가노 츠네노부가 1711년 통신사행에 참여했던 조태억을 그린 그림입니다. 정사 조태억은 푸른색 단령을 입고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아 올려둔 채 앉아서 왼쪽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화면의 왼쪽 하단에는 '법인고천수필(法印古川叟筆)'이라고 쓰여 있고, '양박(養朴)'이라고 새겨진 주문방인이 찍혀 있어 가노 츠네노부의 그림인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필선의 사용이 특징적이며, 옷 주름 선의 굵기 변화도 돋보입니다. 

흉배는 개략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일본인 화가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조선시대 초상화와 당시 일본 초상화의 양식적인 차이점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조선에서는 초상화를 그릴 때 얼굴의 생김새를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얼굴 묘사가 간결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림 세부 살펴보기

이외에 조선의 문인들과 일본의 문사들이 직접적으로 서신을 주고 받은 자료도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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