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세기 한일교류의 주축, 대장경 


만국무쌍(萬國無雙)의 선본(善本)이다


- 일본 정토종 승려 닌쵸(忍澂, 1645~1711)


일본의 승려 닌쵸(忍澂)가 고려대장경이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수함이라고 칭송하며 남긴 말입니다. 

고려가 멸망한 지 약 300년 이후의 일본 승려가 어떻게, 왜 고려대장경을 칭송하는 글을 남기게 된 걸까요?


*대장경 :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모두 갖춘 불교경전의 총서 



ⓒ경남신문 사진부 김승권 기자
ⓒ경남신문 사진부 김승권 기자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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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대장경


불교의 힘을 빌려 외세의 환난을 극복하고자 고려는 총 두 번 대장경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 고려 현종 2년(1011)에 발원하여 선종 4년(1087)에 완성된 대장경을 초조대장경이라고 부르며, 한국 최초의 대장경입니다. 

안타깝게도 초조대장경 목판은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경판으로 인출된 인출본만 남아있습니다.

현전하는 인출본의 경우 일본에서 확인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한국에는 약 200여 권만 남아있지만, 일본 쓰시마와 교토 난젠지에는 약 3000여권이 있다고 합니다.



초조대장경 중 일부를 밑에서 살펴보세요.

재조대장경


초조대장경판이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소실된 이후, 고려는 1236년부터 1251년까지 다시 대장경을 조판하였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81,258매의 대장경판을 재조대장경, 혹은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릅니다.

재조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체제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웃, 일본도 이미 고려에서 만든 대장경의 완벽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고려의 뒤를 이어 세워진 조선과 무로마치 막부간의 교류(15~16세기)에서 가장 중요시되던 물품은 대장경이었습니다.

조선은 일본의 사절단을 대장경을 요청한다는 의미로 청경사(請經使)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일본의 대장경 구청에 관한 내용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살펴볼까요?


일본국 관서 큐슈의 탐제 시부카와 마사루(源道鎭)가 사람을 시켜 예물을 바치고 대장경을 구하였다.

태조실록 12권, 태조 6년 12월 29일

우리들이 온 것은 오로지 대장경판(大藏經板)을 구하려는 것이다. 우리들이 처음 올 때에 어소(御所)에 아뢰기를, ‘만일 경판(經板)을 받들고 올 수 없을 때에는, 우리들은 돌아오지 않겠다. ’고 하였다. 이제 얻지 못하고 돌아가면 반드시 말대로 실천하지 못한 죄를 받을 것이니, 차라리 먹지 않고 죽을 수 밖에 없다.

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 1월 2일

…그러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대장경판이요, 그 나머지 진귀한 물건은 산악과 같이 쌓였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세종실록 26권, 세종 6년 12월 17일

대장경판은 어떻게 만들까요? 


대장경판을 만드는 것에는 수많은 공정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글자를 새기는 목수는 단순히 기술에 능할 뿐만 아니라 글자를 잘 이해하고 인내심이 깊어야 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각자장(刻字匠)이라고 부릅니다.

동영상을 통해 각자장이 대장경판을 어떻게 만드는지 확인해보세요.

나무에 혼을 불어넣는 장인, 각자장

ⓒ문화재청,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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