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유정(泗溟大師 惟政)와 가토 기요마사(加藤 清正)

16~17세기 조선과 일본의 교류는 ‘전쟁’이라는 키워드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조선의 승려 사명대사 유정(泗溟大師 惟政, 1544~1610)과 일본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 清正, 1562~1611)와 그의 세력간의 교류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이래로 사명대사는 조선의 승군(僧軍)을 이끈 승병장(僧兵將)이면서 외교 밀사(密使)로도 활약했습니다. 그는 일본의 선봉장(先鋒將)이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 1537~1598)의 가신(家臣)이었던 기요마사와 만나 조선과 일본에서 총 4차례 회담을 가집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 전쟁 중에 마주한 이 두 인물의 만남은 "불교(佛敎)"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집니다.


<사명당 유정 진영 (泗溟堂 惟政 眞影)>

조선시대, 19세기, 비단에 채색, 99.3x 77.7cm, 

동국대학교박물관 ⓒ동국대학교박물관

<가토 기요마사 초상 (加藤清正像) 모본 (模本)>

니나가와 노리타네 모사, 에도(江戸)시대, 1858, 원본: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 16세기, 종이에 채색, 도쿄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비록 승려들은 유교의 나라였던 조선에서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동시대 일본에서 그들은 국가의 중대사(重大事)에 관여하는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기요마사(清正)는 사명대사(泗溟大師)를 "금강산(金剛山) 고승(高僧)"으로 칭하며 그의 방문을 기뻐하며 예우(禮遇)를 갖추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 두 점의 초상은 승려로써 법의(法衣)를 입은 사명과 무사의 예복을 입은 기요마사를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두 인물의 만남과 "불교"

일본국의 닛신(日眞) 대사께,
태어난 곳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지만,
마음이 한 가지 법(法)에 있으며 같은 스승을 모시고, 석가모니의 참된 묘법을 따릅니다.
그러니 어찌 산하의 모습이 다르다고, 그 마음도 다르겠습니까. 

원하건데, 그 종문의 경구를 참예하고, 또 정토세계에 살기를 염원하며,
같이 법기(法器)가 되고자 하니, 기쁘지 않습니까.
대사께서 잘 생각해주십시오.

- 갑오(1594) 4월 15일. 조선국의 대선사 사명당 사문 북해송운 서 -



사명대사는 1594년부터 총 4차례에 걸쳐 가토 기요마사의 세력과 만나게 됩니다. 너무나도 다른 신분과 삶, 그리고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이들은 "불교"의 수행자로서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춥니다. 특히 위의 인용구는 가토 기요마사의 스승인 닛신화상(日眞和尙, 1565-1626)에 사명대사가 보낸 편지이며, 이들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송운대사분충서난록(松雲大師奮忠序難錄)>

조선시대, 1739년, 종이, 29.8x20.5cm, 국립중앙박물관, © e-뮤지엄

사명대사의 또 다른 호는 송운(松雲)으로, 따라서 송운대사(松雲大師)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은 "충심(忠心)을 떨쳐 국난(國亂)을 풀어준 기록"이라는 뜻을 가지며, 사명의 친필일기, 서간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가토 기요마사와의 외교 회담이 그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록 중에는 기요마사와 교류하며, 대립하고, 또 의심하는 모습이나 닛신과 필담(筆談)을  나누는 모습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 둘의 관계가 오직 불자(佛子)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원만했다"고 평가내리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적국의 인물의 대립 속에서 경계를 낮추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임진 및 정유재란 이후 일본에 탐적사(探賊使)로 보내진 사명대사는 외교승 케이테이 겐소(景轍玄蘇), 쓰시마(対馬)의 번주 소우 요시토시(宗義智), 교토 오산(五山)의 승려들 등과 교류 네트워크를 확대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불교”가 이들의 교류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또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사명대사 유정


좌측

강원 고성 건봉사 낙서암 전(前) 송운대사 원불(願佛), 유리건판, 1912, 11.9x16.4cm, 『유리원판목록집』Ⅰ 72 ©국립중앙박물관


우측 상하단

사명대사(泗溟大師)의 가사와 장삼 (泗溟大師의 金襴袈裟와 長衫), 조선시대, 1544-1610, 가사: 84x240cm, 장삼: 총장 142.5cm, 표충사 호국박물관, 국립 민속문화재 29호 ©표충사 호국박물관

사명대사의 유품(遺品)으로 전해진 유물들입니다. 이 유물들을 통해 비록 승장으로써, 외교관으로써 이름을 알렸지만 또 부처님의 법을 따르렀던 행자(行者)로써의 면모또한 살필 수 있습니다.


가토 기요미사


좌측

도세구소쿠(当世具足), 에도(江戶)시대, 18세기, 철, 가죽, 칠, 비단 등, 높이 70.4,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우측상단

카타 카마야리(片鎌槍), 무로마치(室町)시대, 16세기, 도쿄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우측 하단

<히키후다 가토기요마사의 호랑이 퇴치 (引札類 加藤清正の虎退治)>, 메이지(明治)시대, 다색석판, 36.3x50.5cm 교토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대표적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그는 무장(武裝)을 한 일본의 무사(武士)의 모습에 "호랑이 퇴치”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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