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국립박물관 소장 한국 불교미술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 다자이후시(太宰府市)에 위치한 큐슈국립박물관(九州国立博物館)은 도쿄·나라·교토에 이어 2005년도에 일본에서 네 번째로 설립된 국립박물관입니다. 큐슈는 일본 열도 서쪽에 위치하며, 대륙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에 힘입어 고대부터 인적(人的), 물적(物的) 교류가 번성하였습니다. 특히 큐슈에는 고대 외국 사절을 맞이했던 관청인 '다자이후정청(大宰府政廳)'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관계 속에서 큐슈의 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에 큐슈국립박물관이 설립되었습니다.

큐슈국립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유물은 125건 189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박물관에 별도의 '한국실'이 없고 상설 전시실 내에 여러 아시아 국가의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 전시에서는 '불교미술'을 키워드로 삼아 큐슈국립박물관 내 한국 유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승안6년명 동종(承安六年銘 銅鐘)>

고려시대, 1201년, 총 높이 43.5cm, 음통길이 10cm, 구경 27cm, 상부둘레 60.4cm, 저부둘레 86cm, 큐슈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국립문화재연구소

동종(銅鐘)에는 상부에는 용뉴(龍鈕)와 원통형의 음통(音筒)이 있고, 종신(鐘身)에는 승안(承安) 6년(1201)의 명문(銘文)과 천인(天人), 달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중 용뉴는 음통의 상부로부터 이어지는 두 개의 양각(陽刻)으로 용을 누르는 형상입니다. 종의 하부에는 4구(軀)의 천인(天人)이 있고, 천인과 천인 사이의 2곳에는 연화형(蓮花形) 당좌(撞座)가, 나머지 공간의 두 곳에는 초승달과 명문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특징들은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 676~935)의 전형적인 동종의 형식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시대(高麗, 918~1392)의 새로운 요소가 가미된 것으로써 주목됩니다. 한편, 큐슈국립박물관의 기록에 따르면 동종은 휴가국(日向國) 오비번(飫肥藩, 현재의 미야자키현 니치난시日南市)의 영주인 이토가(伊東家)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명문(銘文)
명문(銘文)

승안(承安) 6년(1201) 2월 천정사(天井寺)에서 금당현배(金堂懸排)가 철 40근 반을 들여 만들었다. 

<대방등무상경(大方等無想經)>

고려시대, 1243년, 목판본, 각표지 28.3×10.2cm, 큐슈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국립문화재연구소

대방등무상경』 권 제3(大方等無想經 券第三)
대방등무상경』 권 제3(大方等無想經 券第三)
계묘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癸卯歲 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간기(刊記)
계묘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癸卯歲 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간기(刊記)

대방등무상경(大方等無想經)』은 중국 북량(北梁, 385년~433년/439년)의 담무참(曇無讖)이 한역한 경전입니다. 부처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결코 죽지 아니하며, 모든 인간은 성불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법하고 있습니다. 각 권의 마지막에는 "계묘세(癸卯歲) 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라는 간기(刊記)가 보입니다. 이는 대방등무상경의 편찬(編纂)과 간행(刊行)이 국왕의 칙명(勅命)을 받아 계묘년(1243)에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통일신라시대, 금동, 높이 20.8cm, 어깨폭 5.4cm, 큐슈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국립문화재연구소

금동여래입상은 머리가 몸에 비해 크고 양손도 비교적 크게 만들어진 반면, 하반신(下半身)은 폭이 좁고 발이 작게 표현되었습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상의 균형은 잘 맞지 않지만, 단순하면서도 굵은 선의 표현이 강한 인상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법의(法衣)는 양 어깨를 감싼 형태이며, 어깨에서 무릎까지 큰 곡선을 그리면서 옷주름이 흘러내립니다. 양감이 강하고 경직된 표정의 얼굴과, 곡선의 옷주름 등 착의법(着衣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불상의 머리와 상체
불상의 머리와 상체
옆면과 뒷면
옆면과 뒷면

<금동지장보살유희좌상(金銅地藏菩薩遊戱坐像)>

고려시대, 10~11세기, 금동, 총 높이 49.2cm, 앉은 높이 26.6cm, 큐슈국립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금동지장보살유희좌상은 머리에는 두건(頭巾)을 쓰고 양손에는 보주(寶珠)를 들고 있습니다. 한편, 자세는 결가부좌(結跏趺坐)에서 한쪽 다리를 풀어 대좌 밑으로 내린 유희좌(遊戱坐)로 지장보살상에서는 드문 형태입니다. 또한 상의 뒷면에는 광배(光背)를 고정하였던 촉(觸)이 있고 도금(鍍金)을 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얼굴과 목, 손과 발 등은 탄력 있는 곡면으로 만들어진 반면, 천의(天衣)나 군의(裙衣)의 옷 주름은 평면적이고 형식화(形式化)되어 있어 표현 방식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특징들로 보아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불상의 몸체 세부모습
불상의 몸체 세부모습
옆면과 뒷면
옆면과 뒷면

<도제보살좌상(陶製菩薩坐像)>

고려 말~조선 초기, 도제, 높이 38.6cm, 큐슈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흙에 유약(釉藥)을 입히고 불에 구운 도기(陶器) 형식으로, 부처님이 법(法)을 설할 때 취한 손 모양인 설법인(說法印)을 결하고 있는 보살좌상입니다. 상의 상반신(上半身)과 하반신(下半身), 그리고 밑면에는 소성(燒成) 과정에서 생긴 균열(龜裂)이 확인되고, 양손의 손가락은 결실(缺失)되었으나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良好)한 편입니다.  머리에는 산(山) 모양의 보관(寶冠)을 썼는데, 보관의 하부에는 굵은 구슬(珠)이 달려있습니다.

불상의 머리와 상체
불상의 머리와 상체
옆면과 뒷면
옆면과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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