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의 사기장 1명과 기장의 사기장 1명을 우선 수일 내로 왜관으로 들여보내어 상의하여 마련할 수 있도록 하며…

梁山沙器匠一名機張沙器匠一名爲 先數日內入送館中以爲商議磨鍊之地爲乎旀


- 『왜인구청등록(倭人求請謄錄)』 1687년(숙종13) 7월 2일 기사-


일본으로 건너 간 조선 도자기


일본에 전해진 조선 도자기들은 다구(茶具)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다완은 고려다완(高麗茶宛)이라고 불리며 애호(愛好) 되었습니다. 분청사기(粉靑沙器)는 고려 말 상감청자(象嵌靑瓷)의 양식이 점차 해체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일본에서 고려다완 선호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분청사기는 일본에서 감상용으로도 애호되며 다양한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호리미시마다완(彫三島茶碗)>

조선시대, 16~17세기, 높이 6.1cm, 입지름 15cm, 굽지름 5.3cm, 도쿄국립박물관(TG-2705) ⓒColbase 

<호리미시마다완>은 분청사기의 일종으로 호리(彫)는 ‘파다’라는 뜻으로 홈을 파고 그 속에 백토물을 발라 상감(象嵌)의 효과를 낸 것을 의미합니다.  미시마다완* 의 일종으로 빗살이 그어진 부분과 몸체 내·외면에는 문양이 양각된 도장을 기면에 찍어 오목해진 부분에 백토(白土)로 상감하여 제작했습니다. 여러 단으로 문양이 구성된 것이 특징입니다. 빗살문은 엇갈린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 단에는 화문(花文)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다완 내면의 꽃문양을 우치하나(內花), 외면의 꽃문양을 소토하나데(外花手)라고 불렀습니다. 외면의 굽 가까이에 화문이 찍힌 것은 드물기 때문에 이는 더 귀하게 여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고려청자에 사용된 대표 기법 중 하나로 표면을 칼로 음각하여 파여진 곳에 백토니(白土泥) 같은 다른 색의 흙을 바른 뒤 마르면 기면에 넘쳐 뭍은 이토(泥土)를 닦아 음각한 부분에 이토가 남아있어 그 부분에 백색의 무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미시마'의 어원 알아보기


1. 미시마(三島)신사에서 펴내는 책력과 닮았다는 설

2. 지금의 경남 거문도가 과거에 삼도(三島)로 불려 유래했다는 설

3. 무로마치시대에 삼도(三島)가 조선의 별칭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 

<분청인화연주문완(粉青印花連珠文碗)>

조선시대, 15세기, 높이 4.6cm, 입지름 11.9cm, 도쿄국립박물관(TG-2784) ⓒColbase

표면이 거친 점토에 백토로 분장하고 인화기법(印花技法)으로 미세한 무늬를 나타낸 것으로 미시마다완의 일종입니다. 다완 내면 중앙에 ‘밀양 장흥고(密陽 長興庫)’라는 명문이 있어 관청에 납부한 공납자기(貢納磁器) 알 수 있습니다. 장흥고는 고려시대 충렬왕 34년(1308)에 관청명을 대부상고(大府上庫)애서 장흥고로 변경한 것이 조선까지 답습 되어 온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돗자리·유지(油紙)· 지물 등을 관리하던 관청이었습니다. '장흥고'명이 적힌 분청사기는 주로 경상도 일대에서 제작되었으며, 충청도에서도 일부 발견됩니다. 경상도 지역에서 제작되던 장흥고명 분청사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다완으로 사용된 것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고려다완 모방


17세기 타케오(武雄)에서 제작된 도기(陶器)입니다. 상감인화기법으로 학(鶴) 문양 등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15세기에 제작된 분청사기에 주로 나타나는데, 일본의 고려다완 애호 속에서 나타난 모방 중 하나 입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장인이 다케오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작 초기에는 고려청자, 분청사기와 유사한 문양을 표현했지만 점차 일본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형태로 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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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사기장 1명과 기장의 사기장 1명을 우선 수일 내로 왜관으로 들여보내어 상의하여 마련할 수 있도록 하며…

梁山沙器匠一名機張沙器匠一名爲 先數日內入送館中以爲商議磨鍊之地爲乎旀


- 『왜인구청등록(倭人求請謄錄)』 1687년(숙종13) 7월 2일 기사-


일본으로 건너 간 조선 도자기


일본에 전래된 조선 도자기들은 다구(茶具)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다완은 고려다완(高麗茶宛)이라고 불리며 애호 되었습니다.

분청사기(粉靑沙器)는 고려 말 상감청자(象嵌靑瓷)의 양식이
점차 해체되는 과정에서 등장합니다. 
분청사기는 일본에서  고려다완의 애호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이 다완들은 다양한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호리미시마 다완(彫三島茶碗)>

조선시대, 16~17세기, 높이 6.1cm, 입지름 15cm, 굽지름 5.3cm, 일본 도쿄국립박물관(TG-2705) ⓒColbase


<호리미시마다완>은 분청사기의 일종으로 호리(彫)는 ‘파다’라는 뜻으로 홈을 파고 그 속에 백토물을 발라 상감(象嵌)의 효과를 낸 것을 의미합니다.  미시마다완*  의 일종으로 빗살이 그어진 부분과 몸체 내·외면에는 문양이 양각된 도장을 기면에 찍어 오목해진 부분에 백토(白土)로 상감하여 제작했습니다. 여러 단으로 문양이 구성된 것이 특징입니다. 빗살무늬는 엇갈린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 단에는 화문(花文)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다완 내면의 꽃문양을 우치하나(內花), 외면의 꽃문양을 소토하나데(外花手)라고 불렀습니다. 외면의 굽 가까이에 화문이 찍힌 것은 드물기 때문에 더 귀하게 여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고려청자에 사용된 대표 기법 중 하나로 표면을 칼로 음각하여 파여진 곳에 백토니(白土泥) 같은 다른 색의 흙을 바른 뒤 마르면 기면에 넘쳐 뭍은 이토(泥土)를 닦아 음각한 부분에 이토가 남아있어 그 부분에 백색의 무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미시마'의 어원 알아보기

1. 미시마(三島)신사에서 펴내는 책력과 닮았다는 설

2. 지금의 경남 거문도가 과거에 삼도(三島)로 불려 유래했
   다는 설

3. 무로마치시대에 삼도(三島)가 조선의 별명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

<분청인화연주문완(粉青印花連珠文碗)>

조선시대, 15세기, 높이 4.6cm, 입지름 11.9cm, 도쿄국립박물관(TG-2784) ⓒColbase


표면이 거친 점토에 백토로 분장하고 인화기법(印花技法)으로 미세한 무늬를 나타낸 것으로 미시마다완의 일종입니다. 다완 내면 중앙에 ‘밀양 장흥고(密陽 長興庫)’라는 명문이 있어 관청에 납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장흥고는 고려시대 충렬왕 34년(1308)에 대부상고(大府上庫)를 장흥고로 관청명을 변경한 것이 조선까지 답습 되어 온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돗자리·유지(油紙)· 지물 등을 관리하던 관청이었습니다. '장흥고'명이 적힌 분청사기는 주로 경상도 일대에서 제작되었으며, 충청도에서도 일부 발견됩니다. 경상도 지역에서 제작되던 장흥고명 분청사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다완으로 사용된 것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고려다완 모방

17세기 타케오(武雄)에서 제작된 도기(陶器)입니다. 상감인화기법으로 학(鶴) 문양 등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15세기 분청사기의 제작에 주로 나타나는데, 일본의 고려다완 애호 속에서 나타난 모방 중 하나 입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장인이 다케오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작 초기에는 고려청자, 분청사기와 유사한 문양을 표현했지만 점차 일본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형태로 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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