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문(網目文) 백자 


'그물문(網目文)'은 그물망이 펼쳐진 모양으로, 중국 명대(明代) 말기에서 청(淸)나라 초기에 걸쳐 경덕진요(景德鎭窯)에서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명대부터 제작되던 것이 일본 에도시대의 의복과 염직 도안으로 애호되며 도자기의 문양으로도 즐겨 사용되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그물문(網目文) 백자

중국의 그물문 자기는 그릇의 안팎에 물결무늬를 그리고, 그 사이에 점을 그려 그물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물고기나 새우 등을 함께 표현한 것은 중국에서 제작된 그물문의 특징입니다. 중국에서 물고기는 여유롭다는 의미의 여(餘)와 발음이 유사하며,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자손 번영의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물고기를 낚아올린 그물문은 길상 문양의 하나로 받아들여져 유행했으나, 점차 일본에서 그 의미는 줄어들고 구도에 치중하여집니다.


일본의 그물문은 일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표현하였습니다. 위의 그릇은 그물문이 물고기 비늘과 같이 간결하지만 매우 치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릇의 중앙에서 바깥으로 펼쳐지는 듯한 그물의 무늬는 그릇의 바깥까지 그 모양이 이어져, 당시 뛰어난 도공들의 기술력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그물무늬는 기모노 직물 도안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의 그물문(網目文) 백자

<백자청화그물문기명(白磁靑畫網目文器皿)>

조선시대, 높이 2.9cm, 입지름 9.9cm, 바닥지름 8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동원 1057)


조선 후기에 제작된 그물문 자기는 히젠자기와의 교류 속에서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에서 제작된 그물문 자기는 얼핏 보면 거북 등껍질 무늬처럼 보이는 듯한데, 육각형 혹은 사각형 모양이 연속되도록 그물문을 그려 낸 것이 특징입니다. 조선의 그물무늬는 일본의 그물무늬와 차이가 있으며, 또한 그릇의 가운데에 장수를 상징하는 '수(壽)'자를 새겨 넣어 일본과는 다른 조선만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생각해보기


율문, 수복자문, 약송문, 등나무문, 그물문은

모두 길상의 의미를 지닌 무늬들 입니다.

다시 한 번 앞선 유물들을 상기하며, 각 무늬의 이름과 맞는 이미지,

그리고 알맞은 의미를 연결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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