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에서 주고 받은 그림


17~18세기 통신사를 통한 직접적인 회화 교류가 중단되면서, 초량왜관은 일본인이 조선 그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 부상하였습니다. 왜관에서 제작된 회화의 주제는 송호도(松虎圖), 죽호도(竹虎圖), 응도(鷹圖), 화조화(花鳥畵), 산수화(山水畵) 등으로 다양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조선의 특산품으로 유명했던 매와 호랑이, 그리고 남종화풍(南宗畵風) 산수화는 대일교역용 회화에서 가장 높은 수요가 있는 주제였습니다. 이는 당시 일본의 무사적(武士的) 취미와 남화(南畵) 유행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왜관을 중심으로 제작, 교역되었던 그림들을 살펴봅시다.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김양기(金良驥), 조선시대, 19세기, 비단에 엷은 색, 121.4×40.5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본래 일본에는 없었던 호랑이는 대일교역용 회화에서도 수요가 많은 주제였습니다.

이 작품은 단원 김홍도(金弘道)의 아들, 김양기(金良驥,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이 그린 것으로, 조선 후기 중앙화단에서 널리 퍼졌던 단원의 화풍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특히 호랑이의 다리가 X자로 엇갈린 모습은 조선 후기 호랑이 그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입니다.

이처럼 김홍도 화풍을 계승한 김양기는 일본 구무품(求貿品)* 회화를 제작한 사례가 있어 19세기까지 부산 화단, 그리고 대일교역용 회화에서도 중앙 화단의 양식이 유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무품(求貿品): 일본이 조선에게 요청한 무역품을 유상으로 지급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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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의 서명 앞에 적힌 "조선(朝鮮)"의 의미

왜관을 통해 유통되었던 대일교역용 회화의 특징은 화가의 호(號)나 이름 앞에 "조선(朝鮮)", "조선인(朝鮮人)" 혹은 "조선국인(朝鮮國人)"과 같이 나라 이름을 나타내는 용어가 덧붙여졌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관서(款署)*에 국명을 기재하는 관행은 중앙화가나 지방화가, 무명화가들의 일본 수출용 그림 혹은 통신사 수행화원들이 남기고 온 서화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관서(款署): 글이나 그림을 완성한 뒤 작품 안에 이름, 그린 장소, 제작날짜 등을 적은 기록


생각해보기

: 한국과 일본의 호랑이 그림, 무엇이 비슷할까요?

"익살스러운 표정과 앞으로 내딛는 왼쪽 다리"

"S자로 휜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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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호랑이 그림, 

무엇이 비슷할까요?

"익살스러운 표정과 앞으로 내딛는 왼쪽 다리"

"S자로 휜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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