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몸은 황금색과 같고, 항상 몸으로부터 사방 1장 길이의 빛을 발한다 .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권 -



고대 금동불상(金銅佛像)

부처님의 몸에는 사람과는 다른 32가지의 형상(像)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금빛의 몸입니다. 금이라는 재료로 그 색을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공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수인(手印), 머리에 높이 솟은 육계(肉髻) 등 불교 교리에 따른 외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였고, 이는 불교를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더불어 현존하는 고대의 금동(金銅) 불상과 보살상은 대부분 30cm이내의 소형(小形)입니다. 이러한 소형상은 이동에 용이(容易)하다는 특징을 바탕으로 제작지(製作地)를 벗어나 한반도 내 혹은 일본까지 전해졌습니다. 전시에서는 여러 금동불, 보살상을 통해 고대(古代)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文化交流) 및 미의식(美意識)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금동삼존불입상(金銅三尊佛立像)>

삼국시대, 백제 6~7세기, 금동, 본존불 높이 28.1cm, 도쿄국립박물관, 중요문화재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6~7세기 조성(造成)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이 상(像)은 하나의 광배에 가운데 본존불(本尊佛)을 중심으로 양 옆에 협시보살(脇侍菩薩)이 있는 삼존 형식의 서 있는, 즉 입상(立像)입니다. 주조형식(鑄造形式)을 분석한 결과 구리를 녹일 때 기포를 내부에 많이 남긴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러한 주조기법(鑄造技法)은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제작된 불상에서 다수 발견됩니다. 따라서 이 불상 역시 한반도에서 제작되어 일본으로 전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둥글고 통통한 양감(量感)을 지닌 얼굴과 광배(光背)의 문양(紋樣) 등을 통해 백제의 불상들과 친연성(親緣性)이 높다고 여겨져 백제의 불상으로 분류됩니다.


한반도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제작된 불상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관음보살입상(觀音菩薩立像)>

아스카(飛鳥)시대, 7세기, 목조, 전체 높이 322.5cm, 도쿄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호류지(法隆寺) 헌납보물(獻納寶物)로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관음보살입상(觀音菩薩立像)입니다. 6∼7세기 초 백제 위덕왕(威德王, 재위 525~598)이 일본 왕실에 보내준 녹나무(樟腦木)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일명 ‘백제관음(百濟觀音)'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호류지(法隆寺) 금당석가삼존상(金堂 釋迦三尊像)>

아스카(飛鳥)시대, 623년, 금동, 전체높이 134.3cm, 나라 호류지(法隆寺) ⓒARTstor

호류지 금당(金堂)에 소장되어 있는 석가삼존상(釋迦三尊像)은 광배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따르면 623년에 쇼토쿠 태자(太子)의 모친(母親)의 사망과 쇼토쿠 태자 부부의 병환으로 발원한 상입니다. 또한 명문 마지막 부분에는 "사마안수도리불사작(司馬鞍首止利佛師作)"이라고 제작자(製作者)를 명시해 두었는데, 그는 백제의 장인(匠人)으로 전해지는 공안부(工鞍部) 출신의 도리(止利)라고 전해집니다.


일본으로 전래된 불교와 불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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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통일신라시대, 8세기, 금동, 높이 12.6cm, 도쿄국립박물관 ⓒColBase (https://colbase.nich.go.jp/)

금동여래입상의 상체

금동여래입상의 옆면

대의(大衣)는 두 어깨를 걸친 통견식(通肩式)이며, 옷 주름은 Y자형을 그리면서 발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손이 작은 형태로 사실적인 볼륨감은 없으나 자연스러움이 특징입니다. 통일신라 8세기에는 Y자형 옷 주름의 금동불입상이 정형화(定型化)되어 다수 제작되었는데, 이 불상 역시 그 중 하나로 생각됩니다.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통일신라시대, 8~9세기, 금동, 전체높이 21.8cm, 대좌 지름 8.8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금동여래입상 뒷면

금동여래입상 상체

불상의 머리의 육계(肉桂)는 2단(壇)으로 높게 솟아 올라있으며, 두 어깨를 덮는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입고 있습니다. 법의는 오른쪽 끝이 왼쪽 팔과 어깨로 넘어가고 내의(內衣)가 사선(斜線)으로 주름진 것이 보입니다. 이러한 법의의 형태는 8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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