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구원의 상징, 보살상(菩薩像)

삼국시대(三國時代) 6~7세기에는 늘씬하고 긴 형태에, 표면 질감이 매끄러운 보살상들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이런 경향은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조성된 금동보살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화관(花冠)을 쓰고 손에는 보주(寶珠)나 정병(淨甁)을 들기도 합니다. 또한 흩날리는 천의(天衣)와 몸의 곡선 등 부드러운 곡선은 당시의 뛰어난 조각기법을 잘 보여줍니다.



<금동관음보살입상(金銅觀音菩薩立像)>

삼국시대, 백제 7세기, 금동, 높이 21.2cm, 국립부여박물관, 국보 293호 ⓒ국립부여박물관

금동관음보살입상의 뒷면

1907년 충청남도(忠淸南道) 부여군(扶餘郡) 규암면(窺岩面) 규암리(窺岩里)에서 출토(出土)된 금동관음보살입상(金銅觀音菩薩立像)입니다. 머리에는 화불(化佛)이 있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왼손은 천의(天衣) 자락을 살짝 잡고 오른손으로는 보주(寶珠)를 잡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양 어깨에서 내려오는 구슬장식(瓔珞)은 허리에서 X자로 교차되며 아래로 흘러내리는 데, 이는 7세기 삼국시대 보살상에서 유행하는 것입니다.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公州 儀堂 金銅菩薩立像)>

삼국시대, 백제 6~7세기, 금동, 높이 25cm, 국립공주박물관, 국보 제247호 ⓒ국립공주박물관

금동보살입상의 얼굴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은 1974년 충청남도(忠淸南道) 공주시(公州市) 의당면(儀堂面) 송정리(松亭里)에서 출토(出土)되었습니다. 머리에는 화불(化佛)이 있는 보관을 쓰고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고, 특이하게 왼손과 오른손 모두 지물(持物)을 들고 있는데 왼손에는 정병(淨甁), 오른손에는 연봉오리를 들고 있습니다. 몸에 밀착된 천의(天衣)는 무릎 앞에서 X자 모양으로 교차하여 어깨 뒤로 넘어가고 그 아래로 U자형으로 길게 표현되었습니다. 또한 목걸이에 연결된 구슬 장식(瓔珞)은 한 줄로 내려와 두 갈래로 나뉘어 뒤로 연결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금동관음보살입상(金銅觀音菩薩立像)>

통일신라시대, 8~9세기, 금동, 전체높이 23.3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금동보살입상의 얼굴

금동보살입상의 뒷면과 대좌

삼단(三壇)의 대좌(臺座)를 갖춘 금동보살입상으로 ①받침과 하대(下臺), ②중대(中臺)와 상대(上臺), ③몸체의 세 부분을 따로 만들어 결합한 것입니다. 이마 위의 턱이 진 부분을 보면 보관(寶冠)을 썼던 것으로 추정되고, 보발(寶髮)의 일부가 늘어져서 귀 옆을 덮고 있습니다. 위로 올린 오른손에는 본래 정병(淨甁) 등의 지물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의 뒷면에는 주조 구멍이 머리에 하나, 그리고 몸통에 전체적으로 크게 뚫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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