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병


조선에서 제작된 백자 사각병에서도 일본의 영향이 보입니다. 사각병은 중국과 일본에서 모두 제작되었지만 조선후기에 제작된 사각병이 어깨를 점차 비스듬이 모깎이하고, 구연부(口緣部)가 살짝 외반된 형태인 것을 보아 조형적으로는 일본의 사각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에서 만들어진 사각병의 문양 또한 일본의 영향의 받은 것들이 보여 일본과의 교류 속에서 등장한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주구의 구연부는 살짝 외반 하였고, 물레 성형하여 따로 부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깨는 모서리를 사선으로 비스듬히 깎았으며, 몸체 4면에는 화훼 (花卉)· 매화(梅花) · 칠보문(七寶文) 과 화류수문(花流水文)* 을 번갈아가며 그려 넣었습니다. 특히 모든 면에서 송피릉(松皮菱)*이라고도 부르는 지그재그형 화창(花窓)을 구성하고, 그 안에 칠보와 화훼를 표현했습니다. 

   송피릉과 화류수문은 일본 에도시대에도 유행했던 문양으로 회화와 직물 도안으로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 문양들은 매우 외래적인 문양으로 조선에서 19세기 이전에 시문된 예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각병의 기형과 문양 모두 일본과의 도자 교류 속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사각병은 정선된 태토에 담청색이 도는 반투명 유약을 바른 것으로 유약의 용융상태가 매우 좋아 고급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분원(分院)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 화류수문(花流水文): 구불구불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꽃을 묘사한 것 

* 송피릉(松皮菱): 소나무 껍질과 같은 생김새의 화창 



 

<백자청화칠보화훼문사각병(白磁靑畫七寶花卉文四角甁)>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14.5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굽 바닥 중앙에는 ‘무신 경슈궁 三’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경수궁(慶壽宮) 궁묘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경수궁은 정조의 후궁인 화빈 윤씨(和嬪 尹氏, 1765-1824)의 궁호이며 사후에 그녀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 또한 경수궁입니다. 따라서 무신년(戊申年)은 1788년, 또는 1848년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데, 유물의 양식이 19세기로 판단되어 1848년으로 추정됩니다.

<색회화훼송피릉문사각병(色繪花卉松皮菱文四角甁)>

에도(江戶)시대, 1730~1760년대, 높이 20.6cm, 지름 8.64cm,  대영박물관(Franks. 1045) ⓒ대영박물관.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Shar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ShareAlike 4.0 International (CC BY-NC-SA 4.0) licence.

  조선과 일본의 송피릉문 비교해보기

조선 후기에 제작된 사각병

생각해보기


이 세 사각병은 각각 중국, 일본, 조선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위의 내용에서 조선의 사각병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는데요.

그렇다면 조선과 일본의 사각병이 중국의 사각병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어깨부분의 모서리입니다.

중국의 사각병은 어깨의 모서리가 둥글고, 일본과 조선은 각지게 깎은 것이 보입니다. 중국은 유럽의 유리제 사각병 모양을 그대로 모방하여 제작했고, 이후 일본은 점차 독자적인 모양으로 제작했습니다. 따라서 조선의 사각병 어깨 모양이 일본에서 주로 제작되었던 모양과 유사한 점에서 그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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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병


조선에서 제작된 백자 사각병에서도 일본의 영향이 보입니다.

사각병은 중국과 일본에서 모두 제작되었지만 조선후기에 제작된 사각병이 어깨를 점차 비스듬이 모깎이하고,

구연부(口緣部)가 살짝 외반된 형태인 것을 보아 조형적으로는 일본의 사각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에서 만들어진 사각병의 문양 또한 일본의 영향의 받은 것들이 보여 일본과의 교류 속에서 등장한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백자청화칠보화훼문사각병(白磁靑畫七寶花卉文四角甁)>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14.5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주구의 구연부는 살짝 외반 하였고, 물레 성형하여 따로 부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깨는 모서리를 사선으로 비스듬히 깎았으며, 몸체 4면에는 화훼 · 매화 · 칠보문과 화류수문(花流水文)* 을 번갈아가며 그려 넣었습니다. 특히 모든 면에서 송피릉(松皮菱)*이라고도 부르는 지그재그형 화창(花窓)을 구성하고, 그 안에 칠보(七寶)와 화훼를 표현했습니다. 송피릉과 화류수문은 일본 에도시대에도 유행했던 문양으로 회화와 직물 도안으로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 문양들은 매우 외래적인 문양으로 조선에서 19세기 이전에 시문된 예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각병의 기형과 문양 모두 일본과의 도자 교류 속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사각병은 정선된 태토에 담청색이 도는 반투명 유약을 바른 것으로 유약의 용융상태가 매우 좋아 고급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분원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 화류수문(花流水文): 구불구불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꽃을 묘사한 것

* 송피릉(松皮菱): 소나무 껍질과 같은 생김새의 화창

무신 경수궁 三
무신 경수궁 三

굽 바닥 중앙에는 ‘무신 경슈궁 三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경수궁(慶壽宮) 궁묘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경수궁은 정조의 후궁인 화빈 윤씨(和嬪 尹氏, 1765-1824)의 궁호이며 사후에 그녀의 신위를 모신 사당 또한 경수궁입니다. 따라서 무신년은 1788년, 또는 1848년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데, 유물의 양식이 1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어 1848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색회화훼송피릉문사각병(色繪花卉松皮菱文四角甁)>

에도(江戶)시대, 1730~1760년대, 높이 20.6cm, 지름 8.64cm,  대영박물관(Franks. 1045) ⓒ대영박물관.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Shar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ShareAlike 4.0 International (CC BY-NC-SA 4.0) licence.

조선과 일본의 송피릉문 비교해보기


조선 후기에 제작된 사각병

생각해보기


이 세 사각병은 각각 중국, 일본, 조선의 작품입니다.

위의 내용에서 조선의 사각병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는데요.

그렇다면 조선과 일본의 사각병이 중국의 사각병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어깨부분의 모서리입니다.

중국의 사각병은 어깨의 모서리가 둥글고,

일본과 조선은 각지게 깎은 것이 보입니다.

중국은 유럽의 유리제 사각병 모양을 그대로 모방하여 제작했고, 일본은 점차 독자적인 모양으로 제작했습니다.

따라서 조선의 사각병 어깨모양이 일본이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모양과 유사한 점에서 그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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