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에서 사용한 히젠자기(肥前磁器) 


조선후기 원빈홍씨(元嬪洪氏, 1766~1779) 인명원(仁明園)을 비롯하여 화협옹주묘(和協翁主, 1733~1752)묘, 화유옹주(和柔翁主, 1740~1777)묘, 의소세손(懿昭世孫, 1750~1752) 의령원(懿寧園)에서는 공통적으로 히젠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가 출토되었습니다. 출토품 내부 성분 분석을 통해 대부분 화장용기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채색백자는 정선된 태토에 굽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금박으로 등나무를 그렸다가 박락(剝落)된 자국이 있어 매우 화려한 고급 기명으로 이해됩니다. 출토품들을 통해서 조선 왕실의 수입산 도자기 애호 일면을 알 수 있습니다.


의소세손 의령원 부장품(懿昭世孫 懿寧園 副葬品)

<백자채색등문합(白磁彩色藤文盒)> 

에도(江戶)시대, 18세기, 높이 3.6cm, 지름  5.1cm, 

국립중앙박물관(덕수 6537)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채색등문잔(白磁彩色藤文盞)>

에도(江戶)시대, 18세기, 높이 4.2cm, 입지름 5.1cm, 뚜껑지름 5.8cm, 국립중앙박물관(덕수 6538) ⓒ국립중앙박물관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 )와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1735~18 15)의 장자인 의소세손의 의령원에서는 히젠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채색등나무문잔과 백자채색등나무문합이 출토되었습니다. 의소세손이 3세의 나이에 요절했기에 혜경궁 홍씨의 것이거나, 신체의 단정함을 중시하는 유교의 덕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합(盒)에는 백분(白粉)과 밀납(蜜蠟)이 남아있어 화장용기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양의 위에 금채(金彩) 사용하여 박락된 자국이 있어 매우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기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화유옹주 묘 부장품(和柔翁主 墓 副葬品)

<백자청화잔(白磁靑畫盞)>

에도(江戶)시대, 18세기, 입지름 5.9cm, 높이 3.7cm,

국립고궁박물관(궁중 376) ⓒ국립고궁박물관

<백자청화합(白磁靑畫盒)>

에도(江戶)시대, 18세기, 지름 5.6cm, 높이 3.3cm, 국립고궁박물관(궁중 377) ⓒ국립고궁박물관 

화유옹주(和柔翁主 )는 영조(英祖)의 열 번째 딸로, 조선 영·정조 때의 문신인 황인점(黃仁點, 1732~1802)과 혼인하였습니다. 화유옹주는 사망 이후 1802년 남편 황인점과 합장되었습니다. 이들의 합장묘에서도 히젠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등나무문이 그려진 합과 잔이 출토되었습니다. 백자청화잔은 구연부가 밖으로 벌어져 있으며, 굽이 좁고 낮은 형태입니다. 백자청화합은 뚜껑이 함께 남아있어 뚜껑과 몸체의 문양이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유물들은 생전에 사용하던 것들로 보입니다.

원빈홍씨 인명원 부장품(元嬪洪氏 仁明園 副葬品)

<백자채색등문합(白磁彩色藤文盒)>

에도(江戶)시대, 18세기, 높이 3.9cm, 지름 5.5cm, 국립중앙박물관(덕수 6555)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채색등문호(白磁彩色藤文壺)>

에도(江戶)시대, 18세기, 높이 3.8cm, 입지름 2.5cm, 바닥지름 2.9cm, 높이 1.2cm, 입지름 2.3cm, 국립중앙박물관(덕수 6552)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채색등문호(白磁彩色藤文壺)>

에도(江戶)시대, 18세기, 높이 5cm, 입지름 2.8cm, 바닥지름 2.8cm, 높이 1.2cm, 입지름 2.1cm, 국립중앙박물관(덕수 6551)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채색등문호(白磁彩色藤文壺)>

에도(江戶)시대, 18세기, 높이 3.6cm, 입지름 2.7cm, 몸통지름 5.5cm, 국립중앙박물관(덕수 6553)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채색등문합(白磁彩色藤文盒)>

에도(江戶)시대, 18세기, 높이 3.3cm, 지름 5.1cm, 국립중앙박물관(덕수 6554) ⓒ국립중앙박물관

원빈홍씨묘에서 출토된 히젠의 채색백자는 모두 다섯 점 입니다. 다섯 점 모두 등나무문이 시문되어 있습니다. 특히 백자채색등나무무늬합의 뚜껑과 몸체 측면에는 흐드러지게 핀 등나무 사이에 조선후기 유행하였던 문자문인 ‘수(壽)’ 자와 ‘복(福)’가 시문되어 있습니다. 수복자문은 일본 내수용에서도 흔치 않은 것으로 조선왕실의 수출용으로 특별하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빈홍씨 묘에서 함께 출토된 은제공예품도 왕실의 제작품으로 추정될 만큼 상당히 정교하여, 당시 정조의 신임과 함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홍국영(洪國榮, 1748~1781)의 동생으로 그 권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히젠 자기 외에 더 많은 부장품이 궁금하시다면 클릭!

등나무문 자세히 알아보기

등나무(藤木)는 일본에서 자생하는 덩굴식물로 포도처럼 주렁주렁 아래로 피는 보랏빛 꽃이 아름다운 식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락(轉落)을 떠올리게 하여 일본에서는 집안에 등나무를 심지 않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주렁주렁 달려있는 꽃의 형태가 쌀을 떠올리기도 하여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로도 쓰였습니다. 여러 의미를 가진 등꽃의 연보라색은 가문의 색으로 최상의 평가를 받았으며 일본의 귀족 가문인 '후지와라씨(藤原氏)'의 문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등꽃의 만발은 곧 후지와라 가문의 번영을 상징하였고, 헤이안시대(平安時代) 후기에 후지와라 가문이 번영한 이후부터 품위와 격조를 상징하는 의장(意匠)으로 여겨져 일본 귀족들이 애호하는 무늬로 자리 잡았습니다.


생각해보기


아래 세 개의 합 중에 어떤 것이 원빈홍씨의 묘인 인명원에서

출토된 것일까요?

세 개의 소형 합 모두 히젠에서 제작된 것이지만, 원빈홍씨의 인명원에서 출토된 것은 특히 조선의 미감이 더욱 반영되어 제작되었습니다.

👇정답은 3초 후에!

✔정답: 1
1번이 원빈 홍씨의 묘인 인명원에서 출토된 합입니다.
원빈홍씨의 묘 인명원에서 출토된 백자채색등문합의 뚜껑과 몸체에는 당시 조선에서 유행했던 '수(壽)'자 와 '복(福)'자가 적혀 있습니다.
길상 문자를 통해서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장수하고 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랬습니다.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