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도자 교류 속에서 등장하는 기형과 문양 


원형합(圓形盒)


찬합은 중국과 일본의 식문화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어온 기형으로, 반찬과 술안주를 담을 수 있는 휴대용 그릇입니다. 여러 층의 그릇에 음식을 담아 뚜껑을 닫고,  편리하게 운반 및  보관할 수 있는 부분이 장점입니다. 한반도에는 사신 교류와 무역 등의 경로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통신사 일행이 일본에서 찬합 문화를 경험하면서 일본의 찬합 문화가 조선으로 활발하게 유입되었습니다.


원형 찬합(圓形饌盒)의 등장

「석야이병위(石野伊兵衛)」에는 300명 분의 식기(食器)를 주문 받은 기록과 더불어 그릇의 치수와 형상, 수, 모양이 그림과 함께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조선 통신사의 기물을 시가라키(信樂)요에서 구웠다는 기록이 있어 1811년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를 통해 시가라키요장에서 제작된 2단의 원형 찬합(饌盒)이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이 원형 찬합은 이후 조선에서 제작된 2단의 원형 찬합의 모본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백자청화모란문이층합(白磁靑畫牡丹文二層盒)>

조선시대, 전체높이 10.5cm, 높이 8.8cm,

입지름 6.3cm, 바닥지름 4.6cm,

국립중앙박물관(신수 11494)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청화당초문이층합(白磁靑畫唐草文二層盒)>

조선시대, 전체높이 10cm, 높이 8.5cm,

입지름 6.9cm, 바닥지름 5.2cm,

국립중앙박물관(신수 11495) ⓒ국립중앙박물관

2개의 찬합 모두 2단으로 구성된 원형 찬합으로, 일본의 시가라키요에서 제작된 찬합의 기형과 가장 유사합니다. 가장 아랫단의 저부는 전형적인 발(鉢)의 형태를 띠며, 아랫단의 구연부와 윗단의 굽이 포개어지도록 고안되었습니다. 뚜껑의 형태는 가운데가 완만하게 팽배한 형태로 각이 없이 매끄럽게 제작되었습니다. 뚜껑과 외면에 각각 모란문(牡丹文)과 당초문(唐草紋)을 시문하였는데, 특히 당초문은 매우 간략하고 도식화되었으며 문양을 단독으로 여백 없이 시문한 것이 특징입니다. 백자청화당초문이층합에는 찬합 뚜껑의 한 가운데 도식화된 '수(壽)'자문이 시문되어 조선인의 취향을 보여줍니다. 

생각해보기


원형찬합은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 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도자기에 담긴 당시 조선통신사의 모습은 어떨지 함께 살펴 볼까요?


첫 번째 사각접시는 일본의 히젠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다를 건너는 용두선(龍頭船) 안에는 관복을 입고 문서를 읽는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이 용두선은 조선인도해선(朝鮮人渡海船)에 등장하는 통신사의 배와 같은 모양으로 해당 인물도 통신사의 일원인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원형접시도 일본 아리타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른쪽에는 후지산(富士山)과 아침 해를 배경으로 기수(旗手)와 나팔수인 두 사절(使節)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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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도자 교류 속에서 등장하는 기형과 문양


원형 합(圓形盒)


찬합은 중국과 일본의 식문화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어온 기형으로, 

반찬과 술안주를 담을 수 있는 휴대용 그릇입니다. 여러 층의 그릇에 음식을 담아 뚜껑을 닫고,  편리하게 운반 및  보관할 수 있는 부분이 장점입니다. 한반도에는 사신 교류와 무역 등의 경로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통신사 일행이 일본에서 찬합 문화를 경험하면서 

일본의 찬합 문화가 조선으로 활발하게 유입되었습니다. 

이후 왕실에서도 찬합이 의례에 사용되어 찬합의 영향으로 인해 

음식의 구성 또한 변화가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형 찬합(圓形饌盒)의 등장

「석야이병위(石野伊兵衛)」에는 300명 분의 식기(食器)를 주문 받은 기록과 더불어 그릇의 치수와 형상, 수, 모양이 그림과 함께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조선통신사의 기물을 시가라키(信樂)요에서 

구웠다는 기록이 있어 1811년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를 통해 

시가라키요장에서 제작된 2단의 원형 찬합(饌盒)이 유입되었다고 

추정됩니다.또한 이 원형 찬합은 이후 조선에서 제작된 2단의 

원형 찬합의 모본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백자청화모란문이층합

(白磁靑畫牡丹文二層盒)>

조선시대, 전체높이 10.5cm, 높이 8.8cm, 입지름 6.3cm, 바닥지름 4.6cm,

국립중앙박물관(신수 11494)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청화당초문이층합

(白磁靑畫唐草文二層盒)>

조선시대, 전체높이 10cm, 

높이 8.5cm, 입지름 6.9cm, 바닥지름 5.2cm,

국립중앙박물관(신수 11495)

ⓒ국립중앙박물관

2개의 찬합 모두 2단으로 구성된 원형 찬합으로, 일본의 시가라키요에서 제작된 찬합의 기형과 가장 유사합니다. 가장 아랫단의 저부는 전형적인 발(鉢)의 형태를 띠며, 아랫단의 구연부와 윗단의 굽이 포개어지도록 고안되었습니다. 뚜껑의 형태는 가운데가 완만하게 팽배한 형태로 각이 없이 매끄럽게 제작되었습니다. 

뚜껑과 외면에 각각 모란문(牡丹文)과 당초문(唐草紋)을  시문하였는데, 특히 당초문은 매우 간략하고 도식화되었으며, 문양을 단독으로 여백 없이 시문한 것이 특징입니다. 백자청화당초문이층합에는 찬합 뚜껑의 한 가운데 도식화된 '수(壽)'자문이 시문되어 조선인의 취향을 보여줍니다.


생각해보


원형찬합은 조선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 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도자기에 담긴 조선통신사의 

모습은 어떨지 함께 살펴 볼까요?

첫번째 사각접시는 일본의 히젠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다를 건너는 용두선(龍頭船) 안에는 관복을 입고 문서를 읽는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이 용두선은 조선인도해선(朝鮮人渡海船)에 등장하는 통신사의 배와 같은 모양으로 해당 인물도 통신사일 것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원형접시도 일본 아리타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른쪽에는 후지산(富士山)과 아침 해를 배경으로 기수(旗手)와 나팔수인 두 통신사를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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